서평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 그리고 너대니얼 호손의 <주홍글씨>

[완다] 2021. 4. 24. 21:30

요즘 드로잉을 하면서 소위, 명작 소설이라고 하든 클래식이라고 하든 세계문학전집류 책들을 오디오북으로 듣는 재미에 푹 빠졌다.
책을 그래도 부족하지 않게 웬만큼은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지나치게 취향에 편중된 바람에 위와 같은 교양서적에 대한 독서는 경험으로 많이 쌓지 못했던 것이다. 뒤늦게 그동안 제목으로만 많이 접했던 책들을 실제로 읽거나 들으면서 나름 뿌듯함과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은 분명 내가 읽었었고, 그것도 마음 속으로 심히 감동을 받았던 책인데 앞부분만 보고 처음 읽는 책으로 간주하고 다시 집어 들고 말았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특히 첫사랑, 주로 사촌 누이들이 그 대상인 이런 도입부를 가진 책들이 워낙 많고 비슷비슷하기도 해서 그 중 하나이겠거니 싶었는데, 듣다 보니 예전의 내가 줄을 치기도 하고 눈물도 흘려가며 읽었던 책이었다. 그래도 다시 한번 달라진 시각과 느낌을 가지고 새로운 감흥에 빠져들었다. 잘 읽었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은 내용과 분위기는 매우 다르지만 바로 하루 전에 읽은 너대니얼 호손의 <주홍글씨>처럼 청교도라는 종교적 색채와 주장이 강하다는 이유로 내 독서 경험 안에서 자연스럽게 묶여서 비교, 대조될 수 있었다.


내용

<주홍글씨(1850)>는 미국 뉴 잉글랜드 지방의 청교도 집안에서 나고 자란 너대니얼 호손이 쓴 소설이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뉴잉글랜드라는 신세계로 건너와 건설한 인습적 도덕사회에서 애정 없는 결혼 제도로 말미암아 불륜이라는 사회적, 종교적 죄를 짓고 사생아를 낳은 여인 헤스터 프린은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공개적으로 참회를 거치며 살아가는 반면, 그와 관계를 맺은 젊은 목사 딤즈데일은 사회적 신분으로 인해 죄를 감추지만 깊이 속죄하며 일생을 보내게 된다. 훗날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목사는 성인처럼 자신을 떠받들고 우상화하는 사람들 앞에서 마침내 자신의 죄, 가슴속의 주홍글씨를 고백하며 처형대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이날 이후 잠시 딴 곳으로 떠났던 헤스터 프린은 다시 마을로 돌아와 주홍글씨를 달고 사람들 속에서 이제 위로를 주며 참된 본보기로 조용히 살아간다.

반면, 앙드레 지드는 프랑스 작가로 <좁은문(1947)>은 한 세기가 지나 쓰여진 소설이다. 마찬가지로 앙드레 지드 역시 프랑스에서는 드문 개신교 신자, 특히 칼뱅파의 청교도 신자였다.
제롬은 어머니(그에게는 외숙모)의 불륜과 가출로 어린 시절 큰 충격을 받은 외사촌 알리사의 눈물을 보게 되고 평생 그녀만을 지키고 사랑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알리사 역시 제롬을 사랑하며 더 나아가 종교 안에서의 합일을 이루고자 애를 쓰지만 친동생인 줄리에트가 제롬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두 사람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자 한다. 이후 줄리에트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지만 알리사의 온전한 그리스도교도가 되고자 하는 열망과 종교적 해탈에 제롬과 함께 들어가고자 하는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은, 두 사람이 함께 들어갈 수 없는, 한 사람도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좁은문> 임을 깨닫게 되고 끝내 지상에서의 사랑을 포기하고 요양원에서 홀로 죽는다.


비교. 대조

<주홍글씨>는 한 세기 전에 씌여졌기도 하고 너대니얼 호손이 작가로서의 경험이 적은 초반에 씌여져서 예술적 기교로 절제나 표현이 정제되어있지 않고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청교도의 모순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강하게 드러나는 반면, <좁은문>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앙드레 지드의 문학적 역량에 따라 세련되고 유려하게 편지글에 담긴 주인공의 고뇌라는 형태 속으로 비판적 메시지를 많이 발산시켰다.

따라서 전자의 경우 인물에 대한 공감이나 온정은 확실이 덜 하긴 하지만 "가슴에 주홍글씨를 달다"라는 표현이 지금까지도 널리 쓰이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볼 때, 이 강렬하고 단순한 은유법은 놀라운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짐작과는 달리 '주홍글씨'를 단 헤스터의 말년(?)이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타의에 의해 주어진 가혹한 형벌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자발적이기도 하였고 겉으로 드러나는 낙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통해 오히려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자유와 책임을 갖게 되었다는 점을 직접 내용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후자는 마찬가지로 성경에서 나온 구절이기는 하지만 "좁은문"이라는 제목에서의 은유가 독자들로부터 이미 묵직한 무게로 다가오며, 인물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 표현들은 호소력이 짙고 공감이 되면서도 직접 그 인물들의 상황에 참여하여 상관하고 싶을 만큼 답답함을 느끼게 해서 주제에 대한 울림을 체험적으로 준다. 예전에 읽었을 때는 알리사의 마음에 기울어지며 그 입장이 이해가 많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제롬에 입장에서 알리사가 안타깝게 보아졌다. 역설적인 것은 오히려 예전에는 내 자신이 제롬과 같은 마음이나 태도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알리사의 그것에 가깝다는 것이다.
간접 체험을 도와주는 소설이 나의 한 면모를 거울처럼 비춰주었고 나를 되돌아보게 해 준 것이 아닐까.